“산 권력이 죽은 권력 때문에 벌벌 떨고있어”

| 2009.06.09 13:53 | 조회 3302

시인 도종환 “이제야 제관으로 뵙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9일 화장되기 전 마지막으로 열린 공식행사인 서울광장 노제(路祭)에서 제관(사회) 역할을 한 도종환 시인(54·사진)은 “가장 뜨거웠지만 가장 외로웠던 분이었고, 그런 분을 혼자 벼랑으로 가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뉘우치는 마음으로 그분을 보냈다”고 말했다.

도 시인은 “영결식이 있긴 했지만 이건 정부가 장의위원회를 꾸려서 공식적으로 하는 행사이고 노제는 시내 한복판에서 국민들과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이별하는 자리였다”면서 “가장 서민적인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국민들로서는 각별한 자리였다”고 밝혔다.

도 시인은 노 전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이 그리 깊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은 가장 치열하게 살았지만 욕되게 살 수 없어서 벼랑에 몸을 던진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을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자리의 뜻이 매우 깊기 때문에 제관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도 시인은 정부가 영결식이 치러진 29일 아침에야 서울광장을 추모객들에게 개방하고 만장에 사용될 대나무를 PVC로 바꾸도록 하는 등 시민들에게 널리 퍼진 추모분위기에 극도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산 권력이 죽은 권력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 것”이라며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노 코멘트’하겠다”고 말했다. 영화로도 제작된 시집 ‘접시꽃 당신’의 작가인 도 시인은 현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김재중기자 hermes@kyunghyang.com>


방송인 김제동 “오늘만은 슬퍼하겠습니다”

29일 서울광장 노제 식전 공연의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제동씨는 “비가 오는 날이든, 맑은 날이든 그분을 생각하겠다”며 “여러분의 눈을 통해서, 마음을 통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마음이 언제까지 지켜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너무 큰 신세를 졌고 우리가 받은 사랑이 너무 컸습니다.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죄송합니다, 오늘은 좀 슬퍼해야겠습니다. ‘운명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운명만은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화장하라’고 하셨는데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운구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자, 이제 바보 대통령, 그러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웠던,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서 자랑스러울,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을 맞이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김씨는 “지난 27일 노제 사회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며 이 결정에는 유족들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청와대 행사를 진행하며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자신의 팬카페에 글을 올려 고인을 추모했다.

<문주영기자 mooni@kyunghyang.com>


명창 안숙선 “취임 때 노래한 게 엊그젠데”

안숙선 명창은 이날 노제에서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데, 님은 어디로 향하시는가…’라며 임방울 명창의 ‘추억’을 노래했다. ‘추억’은 1961년 타계한 임 명창이 가사를 쓰고 곡을 붙여 직접 불렀던 슬픈 노래다.

노래를 다 마친 안 명창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행사 무대에서 소리를 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만 같은데, 어찌 이렇게 황망히 떠나실 수 있느냐”며 “고인을 보내는 자리에서 소리를 할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국립창극단의 공연장을 찾았던 기억도 떠올렸다. “당시 창극단 단장 겸 전주소리축제 위원장으로서 대통령 옆에 앉아 공연에 대한 설명을 해드렸다”며 “아마 대통령께서는 그날 판소리와 국악관현악이 어우러진 공연을 처음 보신 듯했다. 공연이 끝난 후 ‘우리 음악이 이렇게 훌륭한 줄 미처 몰랐다’면서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한 경험도 떠올렸다. “가까이서 뵈었던 그분은 참으로 자상했다. 평양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안 선생 이쪽으로 가까이 오세요. 우리 식구들 중에 빠진 사람 한 명도 없지요?’ 하면서 수행단 일행을 일일이 챙겼다”고 회상했다. 또 “취임기간 중에 그렇게 많은 애를 썼으니, 여생을 시골에서 편하게 보내셨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김희연기자>


가수 윤도현 “공연장 찾아 책 건네셨죠”

‘넌 말했지 철없는 나를 보며/ 이 세상은 그런 게 아니라고/ 또 그렇다고 너의 뜻대로 살 순 없잖아/ 비겁한 세상 비 내린다면 그 비를 맞겠어/ 날 가로막고 내 눈 가리고 내 숨을 조여와도/ 후회없어 걸어왔던 날들 이제 시작이야’ (‘후회없어’ 가사 중)

YB(윤도현밴드)는 자신들의 노래 ‘후회없어’와 ‘너를 보내고’를 29일 치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에서 불렀다. 윤도현씨는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 전 “비록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분이 남기신 뜻을 가슴깊이 담겠다. 그분의 삶에 이 노래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윤씨는 2002년 자신들의 공연장을 찾았던 당시 대선후보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윤씨는 CD를 서로에게 건넸다. 윤씨는 이 자리에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윤씨와 동료들은 25일 봉하마을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YB의 멤버 박태희씨는 밴드 공식 홈페이지에 “가장으로서 음악인으로서 국민 한 사람으로서 똑바로 살아가자.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당신의 삶의 흔적이 내 안에 담겨 있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애초 YB는 국민장 장의위원회의 노제 참여 요청을 받고 곡 선정을 고민했으나, 결국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이의 삶을 노래한 ‘후회없어’를 선택해 무대에 섰다.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가수 안치환 “긴 대열 속에서 그 분 느껴”

가수 안치환씨는 이날 시청 앞 노제에서 ‘마른잎 다시 살아나’와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을 직접 기타를 치며 잇따라 불렀다. 노래를 마친 그는 다소 목이 멘 음성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장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빈틈도 많이 보였던 분이었다”면서 “세상이 그의 진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것만 같아 마음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씨는 영결식 하루 전에도 봉하마을을 찾아 분향하고 돌아왔다면서 “4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야 대통령께 분향을 하고 꽃 한 송이를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최 측에서 시간이 없으면 빨리 분향하고 서울로 올라가라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 긴 대열에 함께 서서 오래도록 봉하마을에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돌아가신 분을 마음으로 느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또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듯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분이 완벽한 정치가, 최고의 정치가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철학과 생각을 사심없이 실천하면서 그 길을 올곧게 걸어가려 했던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문주영기자>

[2009. 5. 29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