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인이, 문학이 할 일이 많은 불행한 시대

| 2009.06.18 10:40 | 조회 3790

 



지독한 데자뷰다. 집회에 나선 시민들이 곤봉에 머리를 맞는 시대, 말 한번 잘못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해야 하는 시대, 다시 해직교사들이 생겨나는 시대다.

아마도 그 또한 이 모든 일들을 보면서 낯설지 않은 과거의 일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시인 도종환. 아내를 잃은 절절한 마음을 표현한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그 또한 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고 복직을 위해 단식을 하고 쓰러지기도 했으며 투옥됐다. 수 많은 이들의 눈물겨운 싸움으로 전교조가 합법단체로 인정받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 보수단체들은 ‘반국가 교육 세력’으로 전교조를 규정하고, 교육당국은 전교조와 맺은 단체협상을 일방적으로 해지 통보한다.

그리고 얼마전 그를 포함한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소위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이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안이했음을 절감하고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작가들은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가 “퇴행의 수준을 넘어 붕괴 직전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기도 한 시인 도종환이 지난 12일 광주를 찾았다. ‘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를 주제로 강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강연에서 들려준 시 이야기와 강연 후 가진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퇴행아닌 붕괴 직전”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남북문제는 극단적인 대립으로 가고 있으며 한반도는 대결국면에 처했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정치적인 대립은 심해졌다. 마치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발전해야 하는데 퇴보했다.”

도종환 시인의 현실 인식이다.

그래서 또한 시인이, 그리고 문학이 할 일이 많은 시대라고도 했다.

작가는 “시대와 불화하는 존재” 일 수 밖에 없다. 제도적 폭력을, 국가 권력을, 현실 정치를, 세상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문학이기 때문. 그는 “그래서 시 쓸 일이 더 많고 문학의 할 일이 더 많다”고 했다.

“시가 당장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시 그리고 문학은 여러 사람들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다. 정서적 호소력을 가진 것이 문학이다. 용산참사의 현실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도 문학이 담을 수 있다.”

답답한 마음으로 촛불을 지켜봤다.

“촛불은 횃불이 아니다. 정부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다. 촛불을 생명의 위해를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태우며 주위를 밝히는 것이며 성찰의 빛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씩 모여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지 고민하는 것이다. 촛불은 바다를 이루고 강을 이룬다. 불이 물결을 이루는 것이다. 그 강물을 보고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하는 위정자는 생각해야 한다.”

벽 앞에서의 담쟁이처럼
명박산성과 차벽 그리고 봉쇄.


나아갈 수 없는 답답함 앞에서 오래된 도종환의 시 ‘담쟁이’는 또 오늘로 걸어들어온다. 어떤 이들은 그 봉쇄 앞에서 도종환의 ‘담쟁이’를 곱씹고 또 곱씹는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사실 이 시는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개인적으로 참 어려운 시기에 쓴 시이다. 그 때 담쟁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우주에는 산도 숲도 많지만 하필 흙한줌 물한방울 없는 벽에 사는 담쟁이가 헤쳐나가는 방식이다. 가느다란 실뿌리를 내서 벽을 붙들고 백 개의 이파리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한 발짝 씩 나간다. 침착한 태도, 조급해하지 않는 마음, 자신에 대한 믿음이 담쟁이한테는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면 알지 못했을 지혜가 시인의 예민한 감성에 포착돼 시가 됐다. 개인적으로도 힘이 됐다던 시는 이제 인터넷으로 널리 퍼져 사람들 사이에 떠다닌다. 문학이 가지는 치유와 각성의 힘이다.

물론 같은 것을 두고 반대의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 말 없이 그 벽을 전봇대 뽑듯 뽑아버릴 수도 있다. 그러함에도 조세희의 소설이나 김남주의 시나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를 들었으면 하는 이들이 있다.

외로움·가난·좌절·억압 속에서 핀 문학

도종환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그리고 그 평탄치 않음이 문학의 자양분이 됐다. 그는 “외로움과 가난과 좌절과 억압과 상실과 버림받음과 아픔이 없었다면 나의 문학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종종 밝혀왔다.

그가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외가에 맡겨져 아버지·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다. 가난과 외로움이 늘 붙어다녔다. 어려운 형편에 대학을 다니는 것도 사치로 느껴졌다. 문학에 빠져들었지만 동시에 자기안으로만 침잠해 들어갔다. 그리고 ‘80년 광주’가 작가에게 들이 닥쳤다. 그는 그 때 군복을 입고 있었다.

“광주에서 여수 쪽으로 내려오는 무장한 시민군 차량들을 저지하기 위해 17번 국도의 한 고갯마루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언덕 양쪽에 호를 팠다. 그렇게 대치한 채 뜬눈으로 새우던 그 오월의 밤에 나는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어느 글에서 이렇게 그 때의 참담했던 심정을 적었다. 그는 그날 M16 소총의 탄창을 몰래 빼서 맨 위의 실탄을 거꾸로 장전했다. 그리고 쓴 시가 ‘사격명령’이었다.

그리고 그 후 그의 시는 사회로 향했다. 살아있는 동안 80년 5월은 부채의식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그의 나이 서른 둘, 결혼 이년 여 만에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아이들이 남았다. 얼마 후 전교조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가 어린 자식들을 남겨 두고 감옥에 들어갔다. 험난한 싸움 끝에 9년 만에 학교에 복직했지만 몸이 어긋났다.

복직한 학교를 그만두고 산방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 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 됐다. 인생의 고비 마다 시가 있어 살았다.

성찰과 각성과 치유의 시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많이 불평등하다. 이걸 줄이는 것이 모두 행복하게 사는 최소한의 것이다. 끔직한 범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5000년 역사 동안 이런 범죄가 언제 있었나.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분노·적개심·질시·미움을 얼마나 키워왔나. 약한 사람만 골라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그도 약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민 소득만 높이는 것이 문제 해결책인가.”

경쟁,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는 시인에게도 그리고 대다수 민중에게 좋은 세상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리게 하는 사회 또한 그렇다.

대한민국 강만수 전장관이 “부자들 가슴에 대못 박으면 되겠습니까”라고 높이 외쳤던 말을 두고 그는 기가 막힐 뿐이다. 차라리 그 말이 싯구였으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반어법 정도로 대접받았을 텐데…. 언어 ‘니가 고생이 많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공존공생하는 태도, 화이부동하는 삶이다. 언젠가 핀란드를 간 적이 있다. 그 곳의 교육은 ‘경쟁’이 아닌 ‘협력’의 원리가 작동한다. 뛰어난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뒤쳐지지 않는 아이를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다. 그래서 핀란드의 아이들은 실력이 좋다. 우리나라 아이들도 실력이 좋다. 그런데 비결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우리에겐 교육철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 야간자율학습 늦게까지 시키고 그거 끝나면 새벽까지 학원보내고 잠 좀 안재우고 아침밥 좀 안 먹이고…. 그게 비결이라고 할 수 있나.”

시와 문학은 ‘공존공생’ ‘화이부동’의 세계에 복무해야 한다. 시인은 어느 날 한옥의 ‘추녀’를 보면서 ‘부드러운 직선’을 생각했다. “추녀의 곡선은 직선의 곧게 다듬은 나무로 만들어진 유려한 곡선”이었다. 매순간 곧음이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었다. 시인은 또 어느날 꽃을 보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했다. 그러한 성찰과 각성의 시간은 ‘담쟁이’의 힘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는 권한다. “날마다 배달되는 시가 있느니 한 번 받아보시라”고. 문화예술위원회가 수년 째 하고 있는 ‘문학집배원’ 이야기다. 시대 속에서 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리라는 그의 믿음이 담겼다.

[2009. 6. 17 광주 지역신문 광주드림 / 글=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