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망부가’는 반쪽짜리 투병의 다름 이름 ‘투쟁’

| 2009.09.24 22:01 | 조회 3813

 

[사랑의 풍경] 도종환 '접시꽃 당신'

도종환(1954~)의 <접시꽃 당신>(1986)은 시집 사상 초유의 밀리언셀러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기록’에 따옴표를 붙인 것은 이 책을 낸 실천문학사가 문인들의 출판운동 차원에서 만들어진 출판사였던 탓에 당시 출간과 판매 자료가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표제시와 관련 작품들의 사연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어서 여기서 되풀이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교사였던 시인이 암에 걸려 먼저 세상을 뜬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망부가(亡婦歌)가 바로 <접시꽃 당신>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하자 기약했던 배우자가 그 약속 저버리고 서둘러 세상을 뜰 때, 남은 한쪽의 착잡하고 막막한 심사는 남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터이다. 그러나 문학이란 신통한 것이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짐작하게 하고 고통과 슬픔에서도 아름다움을 길어 올린다.

“당신의 무덤가에 패랭이꽃 두고 오면/ 당신은 구름으로 시루봉 넘어 날 따라오고/ 당신의 무덤 앞에 소지 한 장 올리고 오면/ 당신은 초저녁별을 들고 내 뒤를 따라오고/ 당신의 무덤가에 노래 한 줄 남기고 오면/ 당신은 풀벌레 울음으로 문간까지 따라오고/ 당신의 무덤 위에 눈물 한 방울 던지고 오면/ 당신은 빗줄기 되어 속살에 젖어오네.”(<당신의 무덤가에> 전문)

죽음조차 뛰어넘는 시인의 순애보에 공감하는 독자들도 시집 <접시꽃 당신>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에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눈치다. 그러니까 질병과 문학의 사회적 맥락 말이다.

“눈에 보이는 빼앗김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빼앗김으로/ 우리들은 더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는데/ 아내의 몸에서 피는 빠져 어디로 가는 걸까/ 몸은 싸움으로 불덩이가 되었는데/ 살들은 흔적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고 없어.”(<병실에서> 부분)

“참답게 산다는 것은/ 참답게 싸운다는 것/ 싸운다는 것은 지킨다는 것/ 빼앗기지 않고 되찾겠다는 것”(<암병동> 부분)

인용한 작품들에서 시인은, 병을 앓고 그 병과 싸우는 과정을 단순한 개인적 불행의 차원으로 내려놓지 않고 구조적 박탈과 그에 맞선 투쟁의 층위로 끌어올린다. 이렇게 됨으로써 아내의 와병과 죽음은 사회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 시들은 시인이 참여하고 있던 동인지 <분단시대>에 발표되었고 100만 독자와 만나기 전에 먼저 당국의 눈길을 끌게 되었다. ‘눈 밝은’ 정보과 형사와 장학사는 시들에 붉은 줄을 그어 그 숨은 의미를 따져 묻고는 시인을 시골 학교로 좌천시켰다. 시인은 그에 굴하지 않고 나중에 전교조라는 결실을 맺게 되는 교육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옥천에 와서>라는 시는 아내를 앗아 간 질병과의 싸움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포착한다(여기서의 ‘아이들’은 우선은 시인과 죽은 아내의 아들과 딸을 가리키겠지만, 교사인 시인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다음 세대 모두를 포괄하는 뜻으로 의미의 확대를 이루기도 한다).
“아내여, 당신을 생각했다/ 이 싸움은 죽어서도 끝날 수 없는 싸움임을 생각했다/ 세상을 옮겨 간 당신까지 다시 돌아와/ 아이들을 지켜주어야 하는 싸움임을 생각했다”(<옥천에 와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