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소금/ 2015년 봄호

관리자 | 2015.03.18 22:26 | 조회 3411


시와소금/ 2015년 봄호

[연속대담․3] 시를 정치로 읽다

● 일시: 2015.1.24. (토)
● 장소: 의원회관 333호
● 참석: 도종환(시인) 공광규(시인, 사회)
● 사진: 진란



                도종환 시인(국회의원)          공광규 시인(본지 편집부장)


1. 정치적인 시와 정치적이지 않은 시


공광규/ 시와소금 연속대담 모두 8개 주제 가운데, ‘시를 소비하다’와 ‘시를 공감하다’에 이어 세 번째 기획 ‘시를 정치로 읽다’ 대담자로 초대하게 되어 기쁩니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을 본 대담의 주인공으로 초대를 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시를 쓰면서 현실 정치에 국회의원 신분으로 참여를 하고 있다는 것과, 등단부터 시를 쓰면서 내내 시와 정치적 상상력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선배님은 시를 처음 시작할 때 ‘분단시대’라는 동인으로 시작을 하셨는데, ‘분단’과 ‘시대’가 주는 민감한 정치성, 즉 동인 이름부터 정치적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시를 시작하게 된 동기와 동인을 만들게 된 일화 같은 것들이 궁금합니다?


도종환/ 작품활동을 시작한 80년대 초는 전두환대통령이 통치하던 시절이었어요. 정치적으로 암흑기였지요. 문학도 마찬가지로 암흑기였어요. 전두환은 《창작과비평》이나 《문학과지성》같은 대표적인 문학지를 발행하지 못하게 했고, 정기간행물 발행을 금지했습니다. 그래서 부정기 간행물을 만들어 작품을 발표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매체가 《실천문학》입니다.
 문인은 본래 내면에 불온성을 내재한 사람들인데, 작품 발표할 매체를 금지한 시대에 살면서 더 시대와 불화하게 된 거죠. 스스로 작품을 발표할 매체를 만들어 문학 활동을 해야 하는 ‘시대’ 자체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고, 그런 시대의 모순의 원인에 대해 생각했던 거죠. 분단모순과 계급모순이 시대의 주요한 모순이고 기본적인 모순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모순을 문학적으로 극복할 방안에 대해 모색하며 시를 썼어요.
 그런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동인을 결성했고, 동인 이름도 《분단시대》라고 정하게 되었어요. 발해와 통일신라가 병존하던 시대를 남북조시대라 한다면 후세에 이 시대를 분단시대라 부를 거라 생각했어요. 강만길 선생의 역사인식, 구중서 선생의 평론 등에서 이론적 토대를 가져온 이름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시대에 대한 정치적, 철학적, 역사적 고민으로부터 문학을 시작하게 되었고, 문학의 시대적 역할을 고뇌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지요.


공광규/ 저도 시의 시작은 교과서에서 배운 탈정치적인 것으로 시작하였으나, 1980년대 초반 민중문화운동에 감염되어 정치성을 띄게 되었고, 투고한 잡지가 정치적인 정간조치로 한 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등단을 다른 곳으로 했고, 첫 시집 때문에 해고가 되어 복직투쟁도 거의 3년이나 했으나 실패했고, 오히려 시를 더 분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습니다. 뒤돌아보면 모든 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쩌면 시와 생활, 생활과 시가 서로 갉아먹거나 도와주면서 인생이 진행되었다는 생각입니다. 혹시 선배님께서 시를 분발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도종환/ 저도 이십대 초반 문학청년시절엔 퇴폐적 낭만주의자였어요. 대책 없이 술 마시고 고꾸라지는 미숙한 문청이었어요. “시인은 헤매는 양임을 명심하라. 목자가 아니다. 시인은 헤매는 동안에 가장 많은 일을 한다. 헤매라.” 소설가 최인훈의 이런 말에 전적으로 찬동하던 보헤미안이었어요.
 그런 제 문학과 인생을 바꾸어 놓은 첫 번째 계기는 광주항쟁이었어요. 1980년 광주는 제 인생을 광주 이전과 광주 이후로 갈라놓았어요. 광주 학살이 저질러진 동시대에 살았던 부끄러움과 참담함은 내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고 문학 역시 변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지요.
 그런 변화는 몇 차례 더 있었어요. 결혼한 지 몇 해 되지 않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뜬 일이 있었고요, 그때 울면서 시 많이 썼지요, 내가 울면서 쓰지 않은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사십대 후반에 몸이 아파 하던 일 모두 내려놓고 산 깊은 곳에 꽤 여러 해 은거해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외로워서 고요하던 그때도 시의 내면 깊은 곳으로 침잠해 가며 역으로 분발하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공광규/ 최근 선배님의 시선집 <<밀물의 시간>>(실천문학사)에 제가 머리글을 쓰면서 언급을 했지만, 선배님은 국어선생님이었으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운동, 즉 전교조 활동으로 징계와 좌천, 투옥과 해직을 당하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고통을 시로 밀고 나가고 문단 조직과 살림을 불리는데 기여를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사회정치적 변동의 파고를 계속 같이 타고 오는 느낌입니다. 지금은 정치의 정점인 국회의원을 하고 있고요. 선배님의 시가 탄생하는 지점도 이런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돌아보면 선배님의 시와 정치의 관계는 어떤 관계를 형성해오셨습니까?   


도종환/ 전교조 활동을 하기 이전부터 제 시의 첫 번째 독자는 정보과 형사였어요. 시를 발표하면 경찰이 먼저 읽고 교육청에 찾아가 교사가 이런 시를 써도 되냐고 장학사들과 논의하는 겁니다. 그러면 교육청에서는 시를 발표하기 전에 교육청에 먼저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문학지에 발표하기 전에 교육청에서 먼저 겸열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내 시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항의하곤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경찰의 견해가 맞아요. 정치적이지 않은 시는 없는 거죠.
 교육운동을 하면서도 초기에는 우리가 하는 일은 정치적이지 않다고 주장했어요. “아이들 잘 가르치고 선생 노릇 잘 하자는 건데 왜 정치적으로 보냐?” 그렇게 따지곤 했지요. 그러나 국정원과 검찰의 생각이 맞아요. 교육운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운동이지요.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환경운동 생태운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동이지요. 여성운동은 얼마나 래디컬한 정치입니까?
 정치는 교실에도 들어와 있고, 침실에도 들어와 있는 거지요. 남녀관계에도 개입하고 사업에도 개입하고 퇴직연금에도 개입하지 않습니까? 우리 일상생활 어디에도 개입하지 않는 정치는 없습니다. 담배값 인상조차 정치적으로 결정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연말정산에 대해서도 정치권을 욕하고, 아파트 전세값이 올라도 정치인을 욕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치가 중요한 거고요. 권력이 선하게 쓰일 수 있는 정치, 권력이 바르게 집행될 수 있게 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지난 삼십년은 정치적으로 격정적인 시기였습니다. 나는 매 시기마다 그 시대의 모순을 끌어안고 고민했고 그 고민을 시로 표현해 왔습니다. 그게 개인적인 어려움이든 시대의 문제이든 그걸 외면하지 않았고 함께 아파했습니다. 그래서 고초를 겪었고 편하게 지내지 못했고 불행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행한 운명을 사랑하는 일 그게 내 시라고 생각합니다.



공광규/ 공감합니다. 역시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정치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정치적 통제속에서 살게 됩니다. 출생에서 혼인, 학교 교육에서 등록금까지, 대중교통요금에서 국방의무까지, 세금과 성교에서부터 오늘 먹게 될 점심값까지 정치적 결정과 통제 속에 있습니다. 결국 고대나 현대나 인간은 정치적으로 결정된 권력의 통제와 자장 안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럼에도 일상과 경험과 사유의 고백인 시가 정치성을 띄면 시의 본질을 위협한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심지가 약한 문인들은 시에 정치적 사회적 상상력을 외면하거나 잃어버렸습니다. 일부는 시와 정치가 서로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기고 있으며, 시가 정치적 내용을 소재나 주제로 하면 대개 문학적으로 실패한다는 미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남북이라는 정치적 상황과 정치권력에 편승하여 문학권력을 누려온 비순수한 문학인들의 잘못된 문학의 확대재생산과 관련이 있다고 보입니다. 선배님께서 보시는 우리 한국 문단과 문학의 정치성, 시의 정치성은 무엇인지요?


2. 시와 정치의 미시적 거리


도종환/ 시가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면 문학적으로 실패한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게 정치적인 소재이든 철학적인 소재이든 종교적인 내용이든 그것에 경도되면 문학적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미적 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미적 거리를 너무 가깝게 설정하면 문학작품으로서의 격이 떨어지게 되는 건 비단 정치적 소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신이라기보다 미학의 문제이지요. 그러나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훌륭한 작품은 얼마나 많습니까?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CM 바우라가 『시와 정치』라는 책에서 소개한 심훈의 「그날이 오면」같은 시는 정치적이면서도 얼마나 뛰어난 시입니까?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같은 김수영의 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게 바치는 송가」같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는 정치적이면서도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시입니다.
 한국문학의 정치성은 한국 현대사가 정치적 독재, 경제적 독점에 의해 주도된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 군사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면서 정치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지요. 불의와 부정에 저항하는 문인 지식인들을 정치적이라고 공격하는 이들은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 문학을 순수하다고 주장하지요. 그러나 그런 주장이야말로 허구요 위선입니다. 불의에 침묵하고 동조하는 게 순수라고 주장하는 문인들 중에 많은 이들이 독재정권에서 문단권력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독재정권의 묵인과 비호 아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순치주의야말로 비순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광규/ 물론 그 전에도 그랬지만, 최근 수년 동안에도 용산 참사나 제주 강정, 세월호 참사에 많은 시인들이 현장에 가고, 시를 쓰고, 책을 내고, 시낭송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사회정치적 사건에 모든 시인들이 달려들어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 많은 시인들이 사회정치적 사건을 시에 끌어들이는 것을 포기하고 개인적 소아에 침몰하여 한국시단의 왜소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독자 현실에 밀착하지 않은 시를 써대다가 문학의 죽음, 시의 죽음이라는 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시의 죽음을 이렇게 보는 저의 소견이 맞는 건지요?


도종환/ 일면 동의합니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합니다. 시대를 반영합니다. 문학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삶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자기 삶, 자기 인생, 그리고 타자의 인생을 반영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고 타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찾는 과정이 문학입니다. 시야를 현실과 동시대로 돌리면 고통 받는 소리가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옥상으로 쫓기던 이웃이 불에 타 죽는 야만의 시대에 귀를 막고 있는 문학도 있을 수 있습니다.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이 가만히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선실 안에서 기다리다가 몰살을 당하는 ‘눈먼 자들의 국가’를 외면하는 문학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것들보다 내 개인의 내면의 고통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내면의 고통을 그리는 것도 훌륭한 문학입니다.
 그러나 우리 문학이 내면으로 도피하고, 시간으로 도피하고, 공간으로 도피하는 동안 독자들은 문학을 외면해 왔습니다. 독자들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절실한 문제를 무시한다고 말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문학이 독자들로부터 이렇게 홀대받는 이유가 작가에게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시와 정치, 본질적 관계성에 대하여


공광규/ 문학의 홀대가 작가에게 있다는 말씀, 공감하고 저도 시에 정진하겠습니다.(웃음) 물론 고대의 지식인들이 시를 반드시 공부를 해서 그렇겠지만, 고대로 동양 많은 정치가들이 시를 썼습니다. 중국의 모택동은 물론 베트남의 국부 호지명의 좋은 시도 있습니다. 조선의 정약용은 나라는 근심하는 마음이 없으면 시가 아니라고 하며 많은 시를 썼고, 고려의 이규보는 역시 좋은 시를 많이 쓰면서 왕의 측근에서 철저한 정치투쟁을 하였고 귀양살이도 했습니다. 중국의 전 주선 장쩌민의 시는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합니다. 이태백의 시를 외우고 다니며 미국대통령을 만나서 외교를 했고요. 오바마도 백악관에서 시낭송 파티를 열고서 ‘말의 힘’을 강조했었고요. 더 재미있는 것은 삼국지 최후의 승자 조조가 시인이었고, 그가 시인이었기 때문에 시로 상대방과 부하들의 마음을 잘 움직여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식들 조식이나 조비도 모두 시를 썼고요. 서양에도 정치가들이 문학을 하거나, 문학을 먼저하고 정치를 한 사례가 있을 건데요. 그런 작가나 작품을 소개해 주시죠?


도종환/ 빅톨 위고는 상원의원을 역임했습니다. 혁명에 동조했고 나폴레옹에 반대해 정치적 망명을 하기도 했고, 그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레미제라블』같은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괴테는 바이마르왕국의 내각 주석과 재무국 장관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데 인생을 바친 다재다능한 작가입니다. 구획정리와 위생분야를 개선해 바이마르를 근대도시로 바꾸는 일을 했고, 예술 활동을 활성화해 국제문화도시로 육성했지요. 그는 재정면에서도 업적이 컸는데요. 국고가 빈약하게 되면 광산채굴 상황을 개선하거나 작물재배를 바꾸게 하는 세세한 일까지 잘 해낸 인물입니다.
 두 번이나 체코의 대통령을 지낸 하벨은 극작가입니다. 그는 밀란 쿤데라처럼 망명하지 않고 체코 민중의 고통과 함께 남아 그들을 위해 희곡을 쓰고 공산정권의 전체주의에 저항했습니다. 벨벳혁명이라는 평화혁명을 이끈 NGO리더인 하벨의 정치 철학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영혼이 있는 정치를 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정치와 다른 비정치의 정치를 하였습니다. 그는 불가능하다고 포기하지 않는 정치를 하였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현실로 만들려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꿈꾸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파블로네루다 역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면서 칠레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대통령 후보이기도 했습니다.


공광규/ 그런데 우리는 시와 정치, 시인과 정치가는 좀 잘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학교육 때문이겠지요? 생각하시는 정치현장에서 보는 문학교육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선배님 개인적으로도 교과서에 실린 시를 빼느냐 마느냐 논란이 벌어졌었는데요?


도종환/ 물론 시인과 정치가 다 잘 맞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기질 상 잘 어울리지 않는 부분도 있고요, 정치적 상상력과 문학적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다르기도 하고요. 정치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가 표현 방식이 크게 다른 점도 있습니다. 정치가 추구하는 바와 문학이 추구하는 바가 다른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치적인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저 역시 정치에 익숙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힘든 게 사실입니다. ... 내가 국회의원이 되자 교과서에 실린 시를 빼야 한다고 정부에서 주장했지요. 아이들에게 정치인이 쓴 시를 읽게 할 수 없다는 논리였지요. 김춘수시인도 전국구 국회의원이었지요. 그런데 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교과서에서 빼자고 한 적은 없었잖아요? 대부분의 언론이 반대하고 문학계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다 반대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었지요. 정치 그 자체를 얼마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공광규/ 도대체 교과서에 선배님의 어떤 시들이 실렸나요?


도종환/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 문학교과서에 「흔들리며 피는 꽃」,「담쟁이」,「여백」,「종례시간」,「수제비」,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등등의 시와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병아리싸움」이란 동시가 실려 있어요.



공광규/ 가장 좋은 시는 정치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시일 겁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정치권력을 의식하고 시를 쓰게 됩니다. 피해의식이기도 하고 자기 검열인거죠. 잘못 걸리면 직장에 잘려서 밥을 굶거나 감옥에 가서 패가망신하죠. 이런 경험이 있는 저는 사실 저는 지금도 사회정치 관련 제재 시를 쓸 때는 자기검열을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시를 쓰면 혹시 누가 어떻게 생각할까? 내 자식들 앞날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이런 것들이죠. 비겁한 거죠. 이 대목에서 저희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1985년 신한민주당 선거대책본부에서 주는 충청남도 제7지구당 선거대책위원회 지도위원 추대장을 우연히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가 봤는데요, 당시 위원장은 김재광이었고요, 제가 대학 졸업 무렵에 아버지가 이제 야당운동 그만 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아들 취직에 방해된다고요.(웃음) 선배님은 어떻습니까? 사회정치적인 시를 쓸 때 자기검열을 하십니까? 




도종환/ 나도 모르게 의식하게 되지요. 오랜 독재정권 치하에서 시를 쓰며 살아오는 동안 몸에 밴 게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시를 쓰는 것 때문에 좌천도 당했고, 문제교사로 낙인이 찍혔고, 감시도 당했고, 해직당하고 감옥갔다 오면서, 문학적 자기 검열 뿐 아니라 전화를 걸다가도 도청을 의식하게 되고, 길을 걷다가도 미행을 의심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피해의식으로 굳어진 측면이 있지요. 감옥 가서 검찰 조사 받을 때 보니까 매달 정기적으로 동태감시와 보고를 하는 서류가 있더군요.


공광규/ 선배님의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2014년 의정보고서를 봤습니다. 물론 ‘부드러운 직선’은 시 제목이기도 하고요. 역사교육의 문제, 기초학문 중심의 폐과와 정원감축을 하는 대학구조개혁에서 예술교육이 희생되고 있는 문제,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하여 최소한의 지원 근거 등 지역문화발전을 위한 새로운 장을 여는 의미 있는 정치활동을 했습니다. 이런 사안들이 사실은 문학창작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데요, 시만 쓸 때보다 현실정치를 하면서 정치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거나 느낀 것이 있는지요?


도종환/ 언젠가 어느 원로 신부님이 “들어가 보니까 어때? 다 개새끼들이지?” 하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다 그런 것만은 아니고요,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참 많아요.” 그랬더니 잠시 나를 쳐다보시다 “벌써 물들었구만!” 하시더라고요.
 밖에서 볼 때는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95%정도 됩니다. 그런데 그런 정치에 대한 혐오는 보수 기득권 세력일수록 강하게 갖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정치를 외면하게 되고, 정치인을 무시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지금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고 유지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정치교과서에 나오는 주장입니다. 보수 언론, 보수 학계, 보수 종교계, 재계 모두 현 체제가 유지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어느 나라나 주류입니다. 미국 일본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습니다. 기득권 세력이 오랜 주류이지요. 현실을 바꾸고 정치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줄어들게 하려면 중도적인 사람들에게 정치를 외면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치혐오를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포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거지요.
 그런 영향 탓에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큰 게 사실입니다. 혈실 정치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변호를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만 정말 열심히 헌신적으로 일하는 부지런한 정치인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4. 각종 문학관 건립과 정치적 분배와 조정의 문제


공광규/ 네, 정치를 부정하면 그 정치가 자기한테 돌아온다고 봅니다. 하여튼 정치적 분배와 조정이 사람 사는 데 필요하다고 보고, 여기에 개입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선배님께서는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때부터 국립근대문학관 필요성을 계속 제기하셨고, 이 성사를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후후임으로 사무총장을 역임할 때도 이것을 받아서 ‘근대문학관 조성을 위한 토론회’를 단행했었고요. 그런데 서울시나 문화체육관광부와 근대문학관 문제로 접촉을 여러 번 했었지만, 정책적 시급성이랄까 이런 것들이 떨어졌고, 문단에서도 공감폭이 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범 문단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통해 담론 활성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토론회를 추진한 것이고요. 혹시 외국의 문학관 사례는 어떻습니까?


도종환/ 상당수 문화 선진 국가들이나 중국, 일본 등 인접 국가들 대부분이 국립이나 국립에 준하는 근현대문학관을 조성해서 그들의 문학적 자산을 수집, 진시, 연구하는 국립 시설을 만들어서 문학적 자산을 알리고 후세들을 위한 교육시설로 활용하고 있어요.
 일본근대문학관은 1967년, 중국 현대문학관은 1985년에 만들어졌고요. 대만의 경우도 2003년에 국립문학관이 설립되었습니다. 작년 9월 염무웅 교수님, 방민호 교수님, 국립중앙도서관 분들과 일본과 중국 문학관을 쭉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일본은 방대한 자료를 꼼꼼하게 수집•보존하고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고, 중국은 그 규모에 놀랐어요.
 일본 근대문학관의 경우에는 일반자료는 물론이고 나츠메 소세키 등 당시대에 활동했던 문인 관련 자료를 일반자료, 특수자료 포함 약 120만점 정도 소장하고 있는데 각종 문헌의 공간, 복간, 공개강좌, 문학전의 개최, 사전편찬 등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가나가와근대문학관은 1984년에 지어졌는데, 지하 3층에서 지상 2층 정도의 대규모 건축물 입니다. 지진을 대비한 특수설계와 화재 방지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 디지털을 활용한 디테일한 검색 및 활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국의 현대문학관은 문학관련 시설물로는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큽니다. 17만권의 책, 2100여종 9만여 권의 잡지, 1만여 점의 육필원고, 8천여 점의 사진, 7800여점의 편지 등 모두 3만여 점의 수집품이 있습니다. 건립하는데 드는 비용, 토지, 기술 등 모든 비용은 정부에서 부담했는데, 국가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인 우리도 참고해볼 만한 사례인 것 같습니다.
 올해는 대만이나 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문학관도 직접 둘러보고 살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공광규/ 그러면 지금 한국의 근대문학관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도종환/ 그동안 국립 근대문학관 조성을 위한 토론회와 간담회, “국립근대문학관 조성 타당성 연구”조사 등을 진행하면서 논의를 진척시켰고요. 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라 국립중앙도서관에 ‘근대문학 정보센터’가 신설됐어요.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근대문학 자료들은 얼마나 되는지, 해외 문학관의 사례는 어떤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우리만의 근대문학관은 어떤 규모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실질적인 고민을 시작하게 된 거지요. 근대문학 정보센터가 출범한 뒤 지난 1년 동안 근대문학 100년 자료 실태 조사도 진행이 됐고, 일본과 중국 문학관도 직접 다녀오는 등 의미 있는 작업들이 많이 진행됐습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직접 만나 국립 근대문학관 건립 필요성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고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건립 부지가 포함된 기본적인 건립 계획(안)까지 보고 받았습니다. 아직 건립위치나 규모를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건립 규모는 약 300~500억 규모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남은 의정활동 기간 동안 관계 부처와 지속적으로 협의해서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공광규/ 각 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공립이나 사립 문학관들도 문제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제정과 운영 문제였습니다. 몇 개 가본 문학관들이 정말 한가하고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론 재정만 투여하는 것도 낭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여름에 호주 시드니에 있는 벤조 페터슨이라는 시인의 생가 겸 문학관을 가봤는데, 거기서는 고급 레스토랑을 하고 있더라고요. 시에서 임대를 한 거죠. 작가 생존 시 집과 가구나 용품들을 그대로 전시도 하고, 거기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작가의 사진이라든가 책들을 구경하더라고요. 지금 같은 전시 일색이 아니라, 이런 식의 운영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학관이 대중의 여가나 삶과 함께하는 공간 말이죠. 최근에 해남에 있는 김남주문학관이 게스트하우스를 한다는 기사를 보고 반가웠고요, 이런 식의 공사립 문학관운영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하려면 정부나 아니면 국회의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문제에도 관심이 있는지요?


도종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는 학예사가 있지만, 문학관에는 학예사가 없습니다. 문학이야 말로 문화융성의 기초이자 핵심적인 기반이지 않습니까.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문학관에 배치될 수 있어야 문학관이 활성화되고, 문학관이 문학관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문학관에 전문성이 생기는 거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현행 박물관 미술관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학예사의 입문단계인 준학예사 자격시험에 ‘문학’분야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제도적으로 문학을 전공한 학예사가 배출되기 어려운 구조인 거지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 요구해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 4조4항 선택과목에 ‘문학(문학사)’가 포함되도록 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월중에 학예사 자문위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이 논의될 것 같습니다.   


공광규/ 문인복지와 관련됩니다. 저도 이 부분은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제가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역임 때 복지위원회를 출범시켜서 범문단이 참여하는 토론회도 국회에서 했었고, 정부의 문인복지 구상에도 참여를 해서 의견을 열심히 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문인만의 복지에는 반대합니다. 문인만 특혜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문인도 전체 국민의 사회복지 안에서 복지를 누려야 되고, 사회복지 개선을 위해 문인도 참여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다만, 문학이나 다른 예술 작업을 시장에만 맞기지 말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로 보아서 가치를 인정하고 그 댓가를 지불하자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시인이 한 해에 시 몇 편을 써서 제출하면, 그 가치를 인정해서 시를 쓰는 것을 주업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하자는 거죠. 아직 허무맹랑한 얘깁니까?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도종환/ 프랑스의 경우에는 작가사회보장협회(AGESSA) 라는 것이 있습니다. 1978년 작가들의 사회보장을 관리하기 위해 출범한 협회인데요. 프랑스 보건복지부와 문화부가 이중으로 관할하는데, 작가분과(가입대상 : 소설가, 시인, 번역가, 삽화가, 극작가, 오페라, 무용대본작가 등), 음악분과, 영화방송(가입대상: 시나리오작가, 라디오/TV방송작가, 멀티미디어작가, 연출가), 사진분과, 이렇게 4개의 분과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세금을 내고, 작가수입이 연 8,487유로를 초과하면 작가사회보장협회에 가입요청을 할 수 있고, 협회에 가입한 작가는 사회의료보험의 혜택과 연금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 또한 자동으로 의료보험혜택을 받고 질병이나 출산 등으로 휴직했을 때, 작가로서의 수입을 토대로 일일급여를 기초건강보험을 통해 지급 받습니다.
 
공광규/ 지자체나 문학단체와 시창작의 활성화를 위해 논의를 하다가 보면, 아직 문학에 대한 기초적인 행정체력이 약한 것을 많이 느낍니다. 이를테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를 위한 많은 정책적 아이디어를 내놔도 그것을 추진할 공무원 조직이나 문단조직의 힘이 딸립니다. 지난 2013년 11월1일 박원순 시장과 문학단체장들이 ‘시의 도시 서울’을 선포하는 행사를 했는데요, 그 이후 후속조치들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시 많은 행사 아이디어와 계획을 세웠거든요. 당시 제가 논의에 참여를 하고 시장이 읽은 선언문을 작성하면서 느낀 것은 공무원 조직이나 문학단체에서 문학을 잘 아는 행정인력을 키우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학은 혼자 하는 것이지 이런 정책이 무슨 필요하냐? 시만 남으면 된다!고 하지만 철부지입니다. 정책적 관심과 도움이 없이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거든요. 이게 사회적 인정이고 시가 갖는 위상이거든요. 공무원 조직이나 문단을 상대를 해보니까 어떻습니까? 전문성 이런 것들이요?
           
도종환/ 행정 체력이 약하다고 하셨는데, 문인의 문학 행정에 관한 능력을 말한다고 보는데요, 공무원 중에도 문학 행정에 밝은 공무원이 자치단체에는 많지 않고 문인 중에도 거의 없습니다. 서울시의 경우 시장의 문화 마인드나 문학 관련 아이디어를 집행해 낼 공무원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전문성과 자신감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업이 잘 추진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한국 문학의 저변을 든든하게 하는 일, 개별 장르로서의 문학을 지원하고 진흥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학계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소통을 통해 ‘한국문학진흥법(가칭)’ 제정을 추진 중입니다. 국가나 지자체가 문학 진흥을 위한 연간 계획을 세워 구체적인 사업을 집행하게 할 법적 근거를 만들 생각입니다. 문인 중에 문학 정책과 문학 행정을 감당할 인력을 양성하는 일 역시 우리에게 놓인 과제입니다.


6. 시인은 어떤 경우에도 시를 멈출 수 없어야한다.


공광규/ 다시 문학으로 돌아와야겠습니다. 시를 계속 발표도 하지만, 국회의원이면서 최근에 신석정문학상도 수상을 하셨습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세속적 명예와 문학상, 이 두 개를 다 갖는 부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정치권력에 주는 아부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는데요?(웃음)


도종환/ 살아오는 동안 나한테 아부하는 사람 별로 못 봤어요. 아직도 무시하고 문학적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특히나 정치권에 들어와 있는 것 때문에 도종환의 문학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런데 신석정시인의 이름으로 상을 주셔서 참 고마웠어요. 얼마나 큰 격려인지 몰라요. 신석정시인처럼 나도 문학의 바탕에 자연이 있지요. 목가적인 노래를 좋아했고 경어체 어조로 시를 썼고요. 그러면서 시정신, 시대정신이 있는 시를 쓰고 싶었어요. 신석정 시인은 “시정신이 없는 민족, 시정신이 없는 국가는 흥할 도리가 없다.” 라고 말씀하신 바 있죠. 나도 시정신이 나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시를 쓰려고 했어요. 서정과 현실 둘 다를 놓치지 않으려 했고요.


공광규/ 도종환은 누구나 인정하는 서정과 현실을 놓치지 않는 시인이지요. 하여튼 배울게 많은 중요하고 특별한 시인입니다. 그건 그렇고, 국회에 진출하면서 시를 쓰거나 문단에 참여하는 원칙이나 이런 것들이 있는지요? 어떻게 문학일정을 관리하십니까?




도종환/ 유홍준 교수가 쓴 칼럼을 보니까 ‘오도이촌’이란 말이 있더군요. 닷새는 도시에서 일하고 이틀은 시골에 묻혀 생활한다는 말이에요. 저도 닷새는 국회에서 봉사하고 이틀은 시골 산방에 묻혀 지낸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래야 기운을 충천하고 다시 여의도에 가서 일할 수 있거든요. 시는 주로 주말에 씁니다. 물론 초고 메모는 어디서든 합니다. 싸움의 한복판에서도 하고, 거리에서도 합니다. 단식농성장에서도 메모를 하고, 여행하는 차안에서도 수첩에 생각을 옮겨 적습니다. 그건 여러분들과 같습니다. 국회의원회관 내 방에서도 수시로 책을 읽습니다. 읽고 쓰고 사유하는 일은 내게 숨 쉬는 일과 같아서 멈추지 않습니다.


공광규/ 국회의원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시인으로 남아야하는데요, 지난해 후반 등단 30주년 겸 회갑으로 시선집을 내었고, 문학상도 받고 그랬는데, 앞으로 문학과 관련한 계획은 무엇인지요? 


도종환/ 올해 새 시집을 낼까 생각 중입니다. 그동안 써둔 시가 꽤 많은데 이번 겨울에 정리하려고 합니다. 최근에 출간된 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라는 시집이 참 좋아서 저도 분발하고 있습니다.


공광규/ 바쁜 시간 감사합니다. 국회의원 활동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건강과 건필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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