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는 꽃을 어떻게 멈춰 세울 수 있는가

홈지기 | 2013.02.07 14:20 | 조회 3477

 길을 나서려니 갑자기 거리가 휑해진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나뭇잎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없고 가로수 빈가지 사이로 먼 산의 풍경들이 다 건너다 보이는 그런 날. 그래, 지난밤의 바람이 얼마나 거셌는지 알겠구나 나무들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겠는지 알 것 같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 있다. 들에는 잔설이 깔리고 개울에는 살얼음이 얼어 이제 가을은 영영 사라지고 말았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 눈앞에 시간이 이렇게 가고 있는 걸 바라보면서도 가는 세월을  손으로는 붙잡을 수 없어 그저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침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이별이 가까이 다가옴을 정녕 알면서도 / 왜 그녀는 그렇게도 선뜻 오고 마는 걸까.” D.H. 로렌스가 겨울을 그렇게 노래했듯이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때가 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미 늦어 버린 인연, 그 다해 가는 인연의 시간을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날이 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어 억장이 무너지는 저녁이 있다.

 

 시드는 꽃을 어떻게 멈춰 세울 수 있는가. 흐르는 강물을 어떻게 붙잡아 둘 수 있는가. 지는 저녁 해를 어떻게 거기 붙잡아 매둘 수 있는가. 가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주위에는 많다. 날아가는 새를 날아가던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겨우 박제에 지나지 않고, 지는 꽃을 가장 아름답게 꽃피던 모습으로 멈춰 세운 것이 조화인 것을 우리는 안다. 하늘을 잃어버린 새와 향기가 없는 꽃을 만든 것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분명히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분명히 둘이 서로 뜨겁게 사랑했는데 그 뜨겁던 사랑은 간 데가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 만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내 곁에서 멀어져가고 사랑도 빛을 잃어간다.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없으며 낡고 때묻고 시들지 않는 것은 없다. 시간의 강가에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있는 나룻배도 없으며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묶어둘 수 있는 어떤 밧줄도 없다.

 

 세월의 달력 한 장을 찢으며 이렇게 또 나이를 먹는구나 하고 자신의 나이를 헤아려보는 날이 있다. 벌써 내가 이런 나이가 되다니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날이 있다. 얼핏 스치는 감출 수 없는 주름 하나를 바라보며 거울에서 눈을 돌리는 때가 있다. 나도 조금씩 모습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끼는 날이 있다. 사실 가장 많이 변 한 건 바로 나 자신인데 그걸 늦게서야 깨닫는 날이 있다. 살면서 가장 잡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그동안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붙잡아 두지 못해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 흘러가고 변해 가는 것을 그저 망연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 이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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