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홈지기 | 2013.07.01 17:17 | 조회 3925

그해 여름

 

 

숲의 나무들은 진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울었다

여기저기서 나뭇잎이 얼굴과 등짝을 벌갈아 뒤집으며

몸부림치거나 옆의 나무 허리를 붙잡고 소리없이 울었다

스크럼을 짜고 우는 나무들도 있었다

산의 갈비뼈를 흔들던 흐느낌은 산맥을 타고 오르기도 했다

나라에 큰 슬픔이 있던 초여름이었다

연초부터 벼랑으로 몰린 사람들이

망루를 오르다 불에 타 죽고

죽은 몸은 다시 냉동되어 여름까지도

망각의 상자 속에 갇혀 이승에 방치되어 있었다

경찰과 깡패가 한 개의 방패 뒤에 저희

그림자를 가리고 발맞추어 지나가고 나면

신문은 무기가 된 활자의 볼트와 너트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구 던졌다

검게 그을린 영혼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는 용역들에게 맞아 성체와 함께 나뒹굴었고

신부님이 두들겨맞았다는 말에

어머니는 묵주를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수백의 시인들이 다시 조시를 쓴다는 말이 들려왔다

부러진 칼을 필통에서 꺼내 연필을 깎으며 나도

흐느껴 우는 나무들에게 몇줄 편지라도 쓰고 싶었다

슬픔이 장마처럼 하늘을 덮었다

하늬바람에 밀려갔다 하는 어느 오후

국정원 직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내 이름도 압핀에 꽂혀 자기들 일정표 모서리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슬퍼하는 이는 넘쳐났으나

잘못했다고 말하는 이는 없이 여름이 지나가고

숲의 나무들만 여러 날씩 몸부림치며 울었다

어제는 뒷마당에서 청죽 몇그루 허리를 꺾고 쓰러지고

차벽(車壁)을 가운데 두고 무거운 구름과 뜨거운 바람이

대치하는 동안 비는 오르고 내리는 길마다 쏟아졌다

곳곳에서 길이 끊어지거나 후퇴하는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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