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홈지기 | 2011.11.29 11:56 | 조회 3390

 나무들이 잎을 따 떨구고 가지 끝에 몇 개의 이파리만을 매달고 있습니다. 은행나무 잎 하나하나가 바람에 날려 허공으로 흩어지는 걸 보면서 나는 아, 아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 하는 소리 말고는 다른 말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나도 그런데 나무는 어떠했을까요? 나뭇잎 한 장씩 내려놓으며 나무는 얼마나 가슴이 아렸을까요?

 

 봄에 아름답게 피었던 꽃 한 송이씩 떨어져 지상에 흩날릴 때도 나무는 나처럼 아, 아 하고 소리를 질렀을 겁니다. 꽃이 질 때도 가슴 아팠겠지만 잎이 질 때 더 가슴 미어졌을 겁니다. 꽃이 질 때는 다시 잎이 돋고 열매를 맺으리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겨울로 가는 나무들은 모진 바람 앞에 빈 몸으로 서서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나무들은 하늘로 향하던 비상의 의지를 내면으로 돌려야 합니다. 몸 가득하던 수액을 가지 끝으로 퍼 나르던 일을 멈추고 남아 있는 힘을 뿌리로 내려 보내야 합니다. 나무의 표피를 갈라 밖으로 싹을 내밀던 초록발전소의 에너지를 이제는 안으로 돌려야 합니다. 중심을 튼튼하게 해야 겨울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가지와 열매와 나뭇잎으로 향하던 녹색의 군사들을 이제는 나무의 안으로, 뿌리로 불러 모아야 합니다.

 

 살다보면 밖을 향해 무한정 뻗어나가기만 하던 공세적 삶에서 수성으로 전환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잘 지키는 일이 중요한 계절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 끝보다 중심을 단단하게 채우는 일이 실은 나무의 체질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연륜이 하나 더 쌓이는 흔적인 나이테도 그때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습니다. 좌우와 아래 위 곁가지로 갈라져 각자 자기 길로 가려는 이들보다 중도가 많아야 합니다. 극단으로 치닫기보다는 중용의 마음을 가져야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찬성과 반대로 딱 갈라져 생각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선명해 보이지만 중립도 있어야 합니다.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바른 태도, 우리가 지향해야할 자세도 중정 中正이어야 밝고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꽃과 나무가 다시 중심으로, 뿌리로 내려가는 긴 겨울 동안, 우리도 우리의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009.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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