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 수 ․ 화 ․ 풍

홈지기 | 2011.11.29 11:58 | 조회 3379

 꽃들이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름다운 것도 참으로 한 순간입니다. 흙, 물, 불, 바람의 기운이 모여 꽃이 되기도 하고 열매가 되기도 하고 생명이 되기도 하다가 그 기운이 다하면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사라집니다.


 산방에 들어와 살던 처음 몇 해 동안은 피폐해진 육신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병문안을 오면서 꽃다발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꽃을 항아리 물에 담아 놓았습니다. 일주일정도 지나면 시들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은 한 달이 지나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두 달이 되면서 잎이 지니 새끼손톱보다 작은 새 잎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석 달을 넘기니 국화는 실뿌리가 하얗게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처방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변하는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산방은 한 쪽 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빛이 많이 들어옵니다. 지붕도 벽도 바닥도 황토로 지어져 있어서 흙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계곡 옆에 지은 집이라 공기가 맑고 신선한 바람이 붑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운이 뿌리 없는 꽃에 뿌리가 나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시는 능행스님은 사람에게 죽음이 시작될 때 처음에는 땅의 성질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근육에 모여 있던 힘이 흩어지고 피부의 탄력이 사라지고 손을 쥘 힘이 없어진답니다. 다음엔 물의 성질이 무너진답니다. 몸  속의 물이 흩어지면서 땀구멍에 끈적끈적한 땀이 송송 맺히는데 그래서 임종직전에 사람들은 갈증과 짓눌림을 느낀답니다. 다음에는 몸의 뜨거운 기운이 흩어지게 된답니다. 몸이 아래쪽에서 머리로 식어 올라오거나 머리 부분에서 발쪽으로 식어 내려간답니다. 마지막에는 바람의 기운이 무너지게 되는데 동공이 풀리면서 호흡의 횟수가 줄어들고 혈압과 맥박이 떨어지며 밖으로 나간 숨이 다시 몸속으로 들어오지 못할 때 호흡이 멎게 된답니다. 사람의 몸도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흙의 기운, 물의 기운, 불의 기운, 바람의 기운이 모여서 생명이 되고 그게 흩어져서 생명이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땅과 강물과 빛과 맑은 바람은 그 자체로서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그것들은 사고파는 상품이기 이전에 우리 몸의 일부인 것입니다.

 

-2010.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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