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매는 일

홈지기 | 2011.11.29 11:59 | 조회 3511

 아침에 밭을 맸습니다. 옥수수를 심은 고랑에 풀을 매주었더니 옥수수 잎이 녹색으로 반짝반짝 납니다. 동네사람들보다 늦게 심어서 다른 집 옥수수보다 키가 반 정도밖에 자라지 않았지만 잘 자라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대견합니다. 한 달 넘게 뜯어다 먹었는데도 하루 이틀이 멀다하고 연두빛 연한 잎을 새로 내는 상추가 아침햇살을 받아서 싱싱하고 푸릅니다.


 싱그러운 오이꽃 호박꽃 위로 새소리가 쏟아지고, 새소리를 따라 밤꽃 향기가 긴 곡선을 그리며 집 주위를 날아다니는 게 보입니다. 땀에 흠뻑 젖도록 일을 했더니 기분이 좋습니다. 아침에 밭 맨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만원어치도 안 되겠지만 일이 주는 기쁨과 뿌듯함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낮에 온 사람, 오후 늦게 와서 일한 사람이 똑같은 품삯을 받는 걸 보고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 포도밭 주인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이야기가 성경에 실려 있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 따지면 이건 충분히 항의할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일찍부터 하느님의 밭에서 일하도록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그 밭에서 일하며 하느님의 관심과 배려도 먼저 받았습니다. 일하는 기쁨과 보람도 거저 받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행복했습니다. 불만이 생긴 것은 늦게 와서 일했는데 똑같은 보상을 받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늦게 온 만큼 하느님의 사랑도 적게 받았습니다. 사랑과 관심도 적게 받았고 일이 주는 기쁨과 땀 흘리는 보람도 작았던 사람 아닙니까? 단지 돈으로 받은 보상만 같을 뿐입니다.


 우리의 생에 대한 보상은 하느님께 맡기고 주시는 만큼 고맙게 받으면 되는 게 아닐까요? 남보다 많이 받았는가 적게 받았는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인간의 계산법으로 보면 지금 제가 한 말은 틀린 말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감사하며 사는 이들에게만 통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아침에 밭에 풀 조금 뽑고 혼자 뿌듯하고 기뻐서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밭고랑에 앉아서 듣는 뻐꾸기 소리가 참 좋아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2010.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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