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과 악연

홈지기 | 2011.11.29 11:59 | 조회 4214

 멧돼지 한 마리가 암자로 뛰어오더니 헛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광경을 본 스님은 짚더미로 멧돼지가 들어간 곳을 덮어주었습니다. 조금 뒤 포수가 헐레벌떡 뛰어와 스님에게 멧돼지 못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스님은 포수에게 “물이나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과거의 생에 지관이었소. 여기저기를 종일 다니다 지치고 허기가 졌는데 마침 묘에 벌초를 하고는 도시락을 먹는 사람이 있었소. 그 사람에게 밥 한 술을 남겨달라고 사정하였으나 그 사람은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다 먹어 버렸소. 당신은 굶어죽으며 그를 원망하였고 그 원한으로 독사의 몸을 받았소. 독사는 옹달샘에 살다가 어느 여름날 물을 마시러 온 그 사람을 물어서 죽여 버렸소. 독사에게 물려 죽어가면서 독사를 죽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죽은 그는 멧돼지로 태어났소. 멧돼지는 결국 또 독사를 죽였고, 독사는 죽어서 포수가 되었으니, 당신은 지금 독사를 죽인 멧돼지를 죽이려고 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멧돼지를 잡지 않으면 인과응보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요.” 포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인과를 깨달아 거기서 사냥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죽으면서 갖는 최후의 일념은 다음 생의 첫 번째 종자가 되어 그대로 움이 트고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지수화풍으로 흩어져 버리지만 영혼은 불멸하여 위치를 바꾸어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고, 잘 죽어야 잘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최후의 마음이 되면 보복을 하기 위한 몸을 받아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애착이나 탐착이 최후의 마음이 되면 그 영혼이 주변을 맴돌게 되는데 사람의 몸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에는 짐승이나 미물의 몸을 받아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짐승들도 생명을 잉태할 때는 평소보다 강한 기운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허공을 떠돌던 영이 감당하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게 된다고 소태산 대종사는 말씀하십니다.


 지관과 조상의 묘를 벌초하던 사람이야말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인연이었는데, 그만 원망과 미움과 죽음과 보복의 악연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밥 한 술을 서로 나누면서 따뜻한 말 한 마디만 건넸다면 얼마나 좋은 과보가 세세생생 이어졌겠습니까?

 

 

-2010.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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