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울음

홈지기 | 2011.11.29 12:02 | 조회 3770

 날이 저무는데 아기 염소가 웁니다. 헛간에 눈발 치는데 늦도록 웁니다. 우는 소리가 애절하기 짝이 없습니다. 울지 않고 어떻게 이 쓸쓸한 저녁을 혼자 견딜 수 있겠습니까. 울지 않고 어떻게 텅 빈 하루를 살 수 있겠습니까. 추워서 우는 게 아니라는 걸 울음소리로 알 것 같습니다.


 고은 시인은 “소가 움메 움메 우는데 어찌 시인이 울지 않고 노래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인이란 울기 위해서 태어났고 울부짖고 괴로워하기 위해서 태어난 죄의 꽃이며 고난의 꽃” 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황혼이나 낙조 그리고 달밤에도 못 견디지만 새나 짐승처럼 늘 울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울지 않으면 못 견딘다고 합니다. 자신의 그 엄청난 양의 시와 문학은 그래서 울음의 성과라는 겁니다.


 천상병 시인은 “아가야, 왜 우니? (.....) 이 새벽 정처 없는 산길로 헤매어 가는 이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아가야, 너에게는 그 문을 곧 열어 줄 엄마 손이 있겠지. 이 아저씨에게는 그런 사랑이 열릴 문도 없단다. 아가야 울지마! 이런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아가야」중에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라고 말한 대목에 이르면, 어린 아이처럼 살았던 시인, 아니 어린 아이 만큼도 못했던 시인을 떠올리며 가슴 아립니다. 문밖에 쫓겨나 울고 있는 계집아이를 보다가 너는 곧 그 문을 열어 줄 엄마의 손길이 있겠지 그러나 “이 아저씨에겐 그런 사랑이 열릴 문이 없단다” 하고 시인은 울었습니다. 그런 시인도 가고, 시인이 울고 간 날의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저녁연기처럼 마을을 감돕니다.


 아기에게 울음은 언어입니다. 배가 고프다는 언어이고 아랫도리가 젖었다는 언어이며 아프다는 신호입니다. 말로 전달하기 쉽지 않아 울음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울면서 쓰는 시인의 시도 그런 언어입니다. 정신의 허기, 정신의 습기에서 시작된 언어이며 어딘가 아프다는 신호입니다. 저도 글 한 줄을 쓰면서 울고, 글 한 줄을 읽다가 우는 날이 있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아기 염소 웁니다. 울음소리가 묻어 있어서 그런지 바람은 더 차갑습니다. 염소는 그래도 소리 내어 울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오후 내내 맘껏 울 수 있어서 좋겠습니다. 

 

-2011.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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