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

홈지기 | 2011.11.29 12:02 | 조회 3626

 산방에서 닭을 키워 본 적이 있습니다. 아는 분들이 가져다 준 중병아리 몇 마리가 자라 알을 낳기 시작하더니 방문 앞에 앉아 그 알을 품었습니다. 이십여 일을  먹지 않고 제 체온으로 알을 품고 부화시키는 걸 지켜보면서 짐승의 모성에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밖에 나갔다 돌아올 때면 닭들이 반가워하며 달려오곤 했는데요, 뒤뚱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은 얼마나 우습고 얼마나 재미 있던지요.

 토끼도 데려다 길렀습니다. 어려서는 젖병에 물을 담아 먹였는데 물 빨아먹는 모습이 참 귀여웠습니다. 제가 책을 읽고 있으면 어린 토끼도 무릎에 앉아서 놀았습니다. 너무 오래 책을 읽고 있다 싶으면 제가 읽는 책을 찢어 놓으며 심술을 부릴 때도 있었습니다. 강아지처럼 저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나 키울 때는 즐겁지만 이것들이 병들고 죽어갈 때는 가슴 아팠습니다. 짐승을 기른다는 것은 짐승의 생계와 살아 있는 동안의 복지와 죽음까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솔개가 채가고 밤이면 살쾡이가 노리고 있었습니다. 병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죽은 짐승들을 땅에 묻으며 가슴 아렸습니다. 짐승을 키워 본 뒤로는 그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됩니다.

 집에서 기르던 소와 돼지를 생매장하는 이들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지겠습니까? 살아 있는 채로 구덩이에 묻혀 죽어간 수백만 마리 짐승들은 얼마나 두려웠고 얼마나 원통했겠습니까? 하느님이 세상 만물을 내실 때 하나 하나를 다 사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들에 핀 꽃도 다 하느님이 생명을 주셔서 태어난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천지는 나와 뿌리가 같고,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불경에서도 가르치십니다. 최수운선생은 하느님의 신령한 영성은 우리의 가슴 속에만 모셔져 있는 게 아니라 천지만물의 안에도 내재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살아 있는 짐승들을 저렇게 생매장한 땅, 비명소리 흥건하게 흘러넘치는 땅에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묻을 수 있겠습니까? 어린 새끼 돼지들이 울부짖어야 할 게 아니라 우리가 뉘우쳐야 합니다. 집단으로 사육하다가 집단으로 살육하는 일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합니까? 우리가 짐승들을 대하는 방식, 먹고 사는 방식을 많이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말 못하는 짐승들이 묻힌 황량한 땅 위로 차가운 바람이 몰려갑니다.

-2011.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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