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홈지기 | 2011.11.29 12:03 | 조회 8653

 연 이틀 계속 봄비가 내렸습니다. 대지와 나무와 풀이 말없이 그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에 물고기 알처럼 매달려 있던 은빛 빗물방울들까지 쏙 들어 마시고 난 뒤 나무들은 가벼운 포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이틀 동안 나무들이 가만히 비를 맞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줄기 맨 끝의 잔가지들을 녹색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빗물을 받아 가지들을 닦고 있었던 겁니다. 나뭇가지만 제 몸을 닦은 게 아니라 빗줄기도 함께 가지를 씻고 문지르고 닦았겠지요. 빗물은 나무의 살갗만 닦아 놓은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나무의 속살과 만나 인사하고 수다 떨고 돌아다녔겠지요. 흙으로 들어가 뿌리를 만나 잠들어 있는 것들을 깨운 뒤 물관을 타고 다니며 신이 난 빗줄기도 있었을 겁니다. 


 몸 안에 있던 나무의 생명은 봄비의 정령들과 만나 몸 구석구석에서 손잡고 입 맞추고 춤추었을 겁니다. 나뭇가지 이곳저곳에서 둘이 끌어안고 밤을 새웠을 겁니다. 나무 안에 있는 생명과 빗줄기 타고 내려온 하늘의 기운이 만나 사랑하는 동안 그 열기가 밖으로 배어 나와 나뭇가지가 푸르게 반짝이는 겁니다. 그것이 꽃순이 되어 가지를 뚫고 나오고 꽃봉오리가 되는 거지요. 햇빛이 그 봉오리를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기운을 보태고 바람이 맑은 기운으로 숨 쉬게 하면서 꽃봉오리가 꽃으로 터지는 거지요.


 비와 햇빛과 바람이 자꾸 꽃과 나무의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합니다. 꽃은 그래서 하늘의 관심과 땅의 대답이 아름답게 만나서 만들어 내는 작품이지요. 그 예술작품이 가장 빛나는 때가 봄이지요. 그래서 봄에는 모든 생명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 나오는 것이지요.


 얼굴에서 봄빛이 반짝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안에 있는 충만한 기운이 그에게 내리는 사랑을 알아챈 사람입니다. 그는 틀림없이 사랑받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기운을 주는 사람일 겁니다. 서로 아름다운 기운과 따뜻한 힘을 주고받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햇빛과 비와 바람과 하늘이 꽃나무에게 그러하듯, 아름답게 개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내부로 들어가 꽃을 피우고 싶어 하고, 몸에서 환한 빛이 나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도 그런 사람인지요. 

 

-2011.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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